• 20.12.11 — 01.03
    • Field without spring
    • Yohan, Choi
    • — 01.03
    • 깊은 낮과 밝은 밤
    • 최요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8회 작성일 20-12-07

본문

금요일-일요일 1시~7시
월요일-목요일 휴관

기획: 안성은
디자인: 마카다미아 오!
주최 및 주관: out_sight & OS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Fri-Sun 1pm~7pm
Mon-Thur closed

Curated by SeongEun An
Design: macadamia oh!
Organized by out_sight & OS
Supported by ARKO
멈춰버린 버스, 270cmX180cm, print on fabric, 2020

멈춰버린 버스, 270cmX180cm, print on fabric, 2020

전시 전경

전시 전경

깊은 낮과 밝은 밤_묻어버리는 소리들#7, 8piece 1set 5X7inch, digital C print, 2020

깊은 낮과 밝은 밤_묻어버리는 소리들#7, 8piece 1set 5X7inch, digital C print, 2020

봄 기다리는 식물들#5, 6piece 1set, 21cmX29.7cm, digital C print, 2020

봄 기다리는 식물들#5, 6piece 1set, 21cmX29.7cm, digital C print, 2020

전시 전경

전시 전경

NAVIGATE, 비디오, 14:28, 2020

NAVIGATE, 비디오, 14:28, 2020

렌트하우스, 69.8cmX104.7cm, digital pigment print, 2020

렌트하우스, 69.8cmX104.7cm, digital pigment print, 2020

전시 전경

전시 전경

마네킹, 4X6inch, digital C print, 2018

마네킹, 4X6inch, digital C print, 2018

전시 전경

전시 전경

묻혀버리는 소리, 8piece 1set, 5 x 7 inch, digital C print, 2020

묻혀버리는 소리, 8piece 1set, 5 x 7 inch, digital C print, 2020

봄 기다리는 식물들, 6piece 1set, 21 x 29.7cm, digital C print, 2020

봄 기다리는 식물들, 6piece 1set, 21 x 29.7cm, digital C print, 2020

(우)낚시하는 미군들, 120 x 80 cm, digital pigment print, 2018

(우)낚시하는 미군들, 120 x 80 cm, digital pigment print, 2018

(좌)미군기지 앞의 할머니, 84.1 x 59.4 cm, digital C print, 2020

(좌)미군기지 앞의 할머니, 84.1 x 59.4 cm, digital C print, 2020

깊은 낮과 밝은 밤

글_안성은(성북구립미술관 큐레이터)


들리지 않는 비명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빛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것은 역사가 되지 않았다. 잊힌 시간은 그저 잊혀 갈 뿐이다. 그런 것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보지 않는 것도 있다. 최요한은 자주 걸었고, 자신이 본 것을 궁금해했다. 의문은 또 다른 걸음으로 이어졌고 이동을 일으켰다.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 동두천시 보산동, 고산동 뺏벌마을, 군산 아메리칸 타운, 상패동 무연고 묘지, 그리고 이어진 장소와 장소들.

2018년 작가가 소요산 일대를 걷다 궁금증을 갖고 찾아보게 된 건물은 낙검자 수용소였다. 1960년대 초, 미군과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성병이 크게 유행하자 미군 측에서 한국 정부에 관리를 요구했고 주한미군 기지촌 성매매 사업 종사 여성들의 성병 관리소를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 성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를 담당하는 기구였으나 정부에 의해 비윤리적 운영과 강압/강제적인 입소로, 일명 ‘토벌’이라 일컬었던 악명 높은 연행이 이어지던 곳이었다. 보건증이 없거나 검진을 받지 않은 여성, 혹은 미군이 성병이 있다고 추측/지목한 여성은 낙검자로 분류되어 입소 되었는데 과도한 페니실린 주사의 부작용으로 과민성 쇼크사는 물론, 괴로움에 스스로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당시 기지촌의 여성들은 한국전쟁 이후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일자리를 찾던 중 인신매매, 직업 사기 등의 이유로 끌려와 성매매의 피해자가 대부분이었다. 일명 ‘언덕 위의 하얀 집’(동두천시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에 ‘토벌당한’ 여자들이 실려 오면 쇠창살이 설치된 수용소에서 최소 4일부터 한 달 이상을 감금당했다1).

성매매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자 정부에서는 성병 관리소를 적극적으로 운영했고, 1962년 6월, 미군기지 인근 104개 특정 (윤락) 지역을 지정하며 해당 지역은 성매매 단속을 제외했다2). 1969년 미군감축계획(닉슨 독트린)이 발표되자 미국과의 관계를 우려하여 ‘기지촌 정화 운동’을 펼치며 환경개선과 함께 동두천, 의정부, 파주, 평택, 군산 등 전국 곳곳에 대대적인 확장을 이어갔다. 같은 해 제정된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4조에서는 기지촌 여성을 ‘위안부’라고 공식 문건으로 표기하며 철저한 관리를 진행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3). 여성의 몸은 어떻게 국가에 의해 통제되며 침해당해 왔는지. 국가적으로 기지촌 여성을 일컬어 ‘달러벌이 산업 역군, 민간 외교관이자 애국자’라 칭하며 성매매를 독려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애국 교육’이 실시되던 때였다4). 국가의 성실한 관리와 열심을 다한 방관으로 1980년대까지, 기지촌 여성 인권 침해가 가장 극심한 시기가 이어졌다. 참으로 밝은, 밤이었다.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의 주한미군 육군 이병 케네스 마클이 한국인 여성 윤금이를 살해한 사건에서 잔혹한 현장이 공개되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개정 및 철수 투쟁, 불평등한 사법처리 문제가 환기되었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개인적 문제로 축소하며 우호적 한미관계 유지를 주장하기도 하여 논란이 되었으나, 한미 SOFA 개정에 따른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부 주도로 공식 설치되어 30~40년간 운영되었던 지역별 낙검자 수용소는 이후 폐허의 공간으로 남았다. 2013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지촌 여성 정화대책(1977, 국정감사 작성)이 공개되며 2014년 기지촌 여성 120명이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여 2018년 2월, 국가 방조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2014년 18대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이 발의되었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어 아직까지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5).

반면 1990년대 중 후반 이후부터는 여성의 성을 매개로 제도화된 해외이주노동에 의해 필리핀 여성이 한국 기지촌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보산동 클럽에서는 여전히 ‘쥬시걸’이라 불리는 필리핀 여성들이 주스를 판다. 국내 성매매 여성의 숫자는 줄었으나, 외국인 계약 노동자의 형식을 취하며 ‘비(非)법, 편법, 합법으로 위장, 법망을 피하기’로 점철된 착취적 요소에 의해 기형적인 운영 방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6).

최근 3년, 작가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어지는 걸음을 쉬지 않았다. 상패동 무연고 묘지에서는 생을 마감하고 번호로만 남은 여자들의 무덤을 보았다. 이름 없는 무덤들 가운데 윤금이 씨의 유해도 여기에 뿌려졌다고 했다. 수백 명의 무연고자가 잠들어있는 이곳에서 생장하며 번식하고 그 스스로가 시들어가기를 반복하는 식물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 익명의 무덤들 위로 피어난 식물들이 소리를 질러댔다7). 들리지 않는 비명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빛이 공간을 비췄다. 미군 기지주변의 마을은 잦은 빈도로 뜨고 내리길 반복하는 전투기의 소리로 가득했다. 거주민에게는 기지 증축을 위하여 강제 이주가 강행되었다. 거주민이 떠난 자리에 미군을 위한 렌트 하우스가 지어졌고, 이 곳은 새 주인을 기다린다. 여러 시설들이 주민들의 고향 위에 지어졌다. 빈 들은 간혹 농사를 짓는 몇 안 되는 주민이 보살폈고, 강가에는 낚시하는 미군들이 있었다. 그리고, 미군 기지 구역임을 표시하며 그 너머의 접근을 금하는 안내판과 막다른 길을 몇 번이고 마주했다.

흔한 풍경과 낯선 장면이 교차했다. 고요한 낮이면 짐짓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골목에서부터 감시와 경고의 문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소리에 둘러싸이기도 했다.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은 극적으로 묘사되거나, 작가 특유의 색온도가 담긴 서사적 이미지가 되어 전시장에 놓였다. 좌푯값으로 기록된 현장의 소리를 녹음하여 뜨고 지는 시간이 담긴 사운드 작업은 개별의 헤드셋에서 흘러나와 전시장의 바닥과 벽면을 타고 웅성거린다. 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는, 그러나 부재한 사람들의 목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 《깊은 낮과 밝은 밤(Field without spring)》에는 최요한이 보고, 듣고, 남긴 것을 담았다. 여기에는 움직이고 멈춘 사진과 소리가 있다. 최요한의 작업은 시대가 지나쳐 온 사람들과 장소, 순간을 기록하고 호명한다. 때로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있다. 호명은 존재를 기록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지는 다음의 응답을 기다리며 지금, 여기에서 부른다.

….
나는 수없이 많은 쓰레기를 밟으며 건물 안을 서성였다.
흔적을 찾아보겠다고 와봤지만, 그 어떠한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멍하게 몇 개의 방을 눈으로 더듬었다.
바람이 불었고 이곳저곳에서 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무너진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내는 기묘한 소리도.
‘몽키 하우스’라는 이 공간은 불청객을 뱉어내고 싶었나 보다.
나오는 길에는 초소에서 동네 주민들의 음성이 들렸다.
….
거문돌 가는 길.
“맞아. 저 위야”
“저 위가 맞아요?”
“저 위로 올라가서 계속 쭉 가다 보면, 기지의 담벼락이 나와 거기서 더 올라가면 돼”
친절한 설명에도 때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계곡에서 한 여성이 미군에게 살해를 당했었다.
당시 그 미군은 교묘하게 커다란 돌로 숨겨놓았다고 한다.
자신의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의 신고로 이 사건이 밝혀졌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미군들이 시신을 은폐할까 봐 밤낮 교대로 시신 옆을 지켰다.
장소를 자세히 살피면 무엇이라도 찾으리라 생각했지만, 자세히 볼수록 계곡을 이루는 나무와 돌 그리고 물만 자세히 보였다. 계곡의 끝자락에는 맑은 물만 흘렀다.
평화는 어디로 흐를까
….
과거의 의문과 어색함을 가지고 또다시 방문했다.
….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간판이 켜져 있는 장면들은 극장의 조명 같았다.
나는 관련된 이름 없는 풍경들과 오브제들을 카메라에 마구마구 욱여 넣었다
….
늦은 오후 장소에 불이 하나씩 하나씩 켜졌다.
작은 식당에서는 조그마하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조금 더 걸으니 술집이 나왔고 공사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 길로 들어온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철거 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걸었다. 동남아 인들을 지나쳤고 슈퍼 앞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할머니를 지나쳤다. 미군으로 보이는 사람도 지나치자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 최요한 작가 노트 중



-----
1) 허재현 기자, 기지촌 여성 김정자의 증언, “인신매매 당한 뒤 매일밤 울면서 미군을 받았다”, 한겨레, 2014.07.05.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5563.html (접속 2020.12.10)
2) 1961년 윤락방지법을 제정해 성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나, 주한미군기지 지역은 한국정부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으로 사실상 국가에서 방치한 합법적-불법 성매매가 이루어졌다.
3) 김현선, 신영숙. 《미군 위안부 역사 자료집》 새움터. 2014
4) 박준용 기자, 《’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2. 민간이 대리하고 국가가 방치했다, 시사저널, 2016.08.19.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843 (접속 2020.12.10.)
5) 캐서린 H.S. 문. 《동맹 속의 섹스》 삼인, 2002
6) 한정우, ¡¸필리핀 이주 기지촌 여성 ‘쥬시걸’의 민족지적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여성학논집, 제31권 제2호, (2014) pp.33-65, 참조/인용
7) 최요한 작가노트 #4, 2019



Inaudible scream and light that belongs nowhere
SeongEun An (curator at Seongbuk Museum of Art)

A very personal story didn't get recorded, and thus, it did not become history. Forgotten time just continues to get forgotten. There are many things as such everywhere. Being visible doesn't mean that everyone sees it. As such, some things are visible yet unseen. Yohan Choi often walked and was curious about what he saw. Curiosity led to another walk and caused another move. The Soyosan STD confinement facility, Bosan-dong in Dongduchoen-si, Bbaedbul town in Gosan-dong, American Town in Gunsan, the cemetery for those without surviving family in Sangpae-dong, and other following places.

It is the STD confinement facility near Soyosan that the artist became curious about while walking near Soyosan in 2018 and began to research. In The early 1960s, when venereal diseases prevailed among the GIs and the female sex workers, the US military demanded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control these diseases. So the state built the facility to control venereal diseases of the sex workers in the US Army Camptown. The facility was for testing and treating venereal diseases, but, in fact, it was a place where the notorious subjugation called 'Tobeol' happened, as the confirmed were handled unethically by the government to be cast to the facility forcefully. Those who did not carry health cards, those who did not take the tests, those who were suspected/named for having STDs by the GIs were classified as the 'failed cases' to be put into the facility. There were numerous deaths from penicillin overdose shock and death leaps from the rooftop. The females living in Kijichon at the time were mostly victims of trafficking having been kidnapped while looking for jobs for a living after the Korean War. Once confined in the so-called 'white house on the hill (Soyosan STD confinement facility in Dongducheon)', they would be locked up for at least four days and up to a month in the barred camp(1).


As prostitution earned much foreign currenc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ctively managed the STD confinement facility. In June 1962, it designated 104 prostitution areas near the US Army camp and made the area an exception to the crackdown(2). As the Nixon Doctrine in 1969 announced the reduction of US forces in South Korea, considering its relationship with the US, the government started the 'Kijichon cleanup movement'. And the state extended this campaign to improve the environment of the whole nation, including places such as Dongducheon, Uijeongbu, Paju, Pyeongtaek, Gunsan, etc. The article of the Infectious Diseases Prevention Act implemented the same year proves that the Kijichon sex workers were officially labelled as 'comfort women' and strictly administered by the state(3). Female bodies were controlled and infringed by the state as such. It was a time when there was a monthly patriotism education session, in which the sex workers were referred to as 'private diplomats' or the 'industrial force for dollars' encouraged to sell sex for foreign currency(4). Thanks to the state's earnest control and diligent bystanding, until the 1980s, a severe violation of female rights in Kijichon continued. It was, indeed, bright a night.


In 1992, with the murder of Yun Geum-i, a Korean female, by private Kenneth Markle, a US serviceman, and the revelation of the brutal murder scene to the media, the issues surrounding the revision of 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and the prerogatives of the US forces were brought to attention. Some conservatives insisted on maintaining the relationship with the US by reducing the issue as a personal affair. But the voices demanding the revision of the SOFA continued to grow. The state-managed STD control facility in Soyosan has remained as a ruin since then. In 2013, the parliamentary inspection of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brought the documents from 1977 related to the Kijichon cleanup to light. In 2014, 120 of Kijichon women accused the state for its reparation. In February 2018, the first verdict recognised the state's responsibility for aiding and abetting. In 2014, at the 18th National Assembly, a related legislative bill was proposed but saw no progress as it was automatically expired at the end of the term(5).


However, from the mid-1990s, females migrated to South Korean Kijichon from the Philippines within the institutionalised labour migration system that mediated female sex. To this day, Filipinas called 'Juicy girls' sell juice in the clubs of Bosan-dong. The number of Korean sex worker has reduced, but the deformed management system of exploitation continues in the disguise of foreign contract labour that is 'non-lawful, expediential, camouflaged-as-legal, evading-the-law'(6).


For the last three years, the artist has not ceased to make footsteps from here to there. His walk led him to the graves of the women whose lives had been reduced to mere numbers at the Sangpae-dong cemetery for those without surviving family. They say that Yun Geum-i's remains have been scattered there as well. Plants that grow, reproduce, and wither in the cycle were keeping the place of the hundreds of women deceased without relatives and friends. The plants, blooming over the graves of the anonymous, were screaming(7). Inaudible outcries and light that doesn't belong anywhere were illuminating the space. The village next to the US army base was filled with the noise of the fighter planes repeatedly landing and departing. The villagers were deported for the expansion of the base. Rent houses for the US servicemen replaced the homes of the villagers and waited for their new tenants. Many facilities were built over the ruin of others' homes. The few Remaining villagers farmed the empty field while the US servicemen fished in the river. And Choi faced the dead-ends with warning signs, again and again, that mark the US army territory border and prohibit trespassing.


Familiar landscapes and unfamiliar scenes intersected. During the calm daytimes, noises of surveillance and alerts of the warning signs would surround the alleyways. Photos capturing those moments, depicting dramatically or narrating with the colour temperature peculiar to the artist, are displayed in the gallery. The sounds of time rising and setting, documented at the sites and labelled as the recorded spots' coordination value, are leaking from the headsets in the gallery to flow and murmur along its floor and walls. It sounds like the voices of those absent people who are still here.


What Yohan Choi witnessed, heard, and kept has been put into the exhibition Field without Spring. Here, we are with the pictures and sounds that were moved and ceased. Choi's works record and call the people, places, and times that the era had bypassed. Sometimes, calling the names feels like that's all that is needed. Calling is fundamental for recording the being, after all. Waiting for the callback, I, hereby, am calling.







Stepping on a mess of wastes, I wandered inside the building.
I came to seek for traces, but couldn't find any.
I blankly groped a couple of rooms.
The wind blew, and I heard grasses whispering here and there.
Along with the strange noise from the lamps hung on the fallen ceiling.
Perhaps the monkey house wanted to spit the uninvited out.
I heard the villagers' voices by the guard post on my way out.



Way to Geomundol.
"Yes, it's up there."
"Is it up there?"
"Walk up that direction and head straight, then you'll see the wall of the army base. Climb up a little more, and you're there."
Sometimes there are things that cannot be found even with kind explanation.


A woman was killed by a US serviceman in the valley.
Then, the American had adroitly hidden the body with a big rock.
They say that he had told his friend about it, and the friend's report revealed the crime.
The villagers guarded the body, being afraid that the US army would conceal it.
I thought I would find something, anything, if I looked closely. The more I looked, it was only the trees, rocks, and water of the valley that I saw in greater detail. Clear water flowed in the edge of the valley.
To which direction does peace flow.

I visited once again with the curiosity and awkwardness from my previous visits.

Looking back at the alleyway that I passed, the dark scene with a lightened signboard reminded me of a stage with lighting.
I crammed the nameless landscapes and objects related into my camera.

Late in the afternoon, there the streetlights lit up, one by one.
Murmurs of conversations leaked out from small diners.
I reached a bar as I continued on, and it was full of construction noises.
After a couple of minute's walk along the alley, I figured that it was under demolition.
I continued walking. I passed by South East Asians; I passed by an elderly lady smoking a cigarette. I passed by someone who seemed to be a US serviceman. I reached the dead-end.



(1) Heo Jae-hyun reporter, Kim Jung-Ja, a Kijichon female testifies, “I took in US servicemen everynight, crying, after being trafficked.” The Hankyoreh, 2014.07.05.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5563.html (accessed: 2020.12.10)
(2) Prostitution was legally prohibited after enactment of the Anti-prostitution Law in 1961, but for the camp town being an area of extraterritorial jurisdiction, legal/illegal prostitution prevailed in the village under the state’s neglect.
(3) Kim Hyun-sun, Shin Young-suk, <Comfort Women for US military source book> Saeumteo, 2014
(4) Park Jun-yong reporter, <‘Comfort Women for US military’, the memoir of its survival> #2. Privates substituted while the state neglected Sisa-Journal, 2016.08.19.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843 (accessed: 2020.12.10.)
(5) Katherine H. S. Moon <Sex Among Allies: Military Prostitution in U.S.-Korea Relations>, Samin, 2002
(6) Han, Jeong Woo, <An Ethnographic Study of Filipina Migrant ‘Juicy Girls’ at a Military Camp Town in Korea> WSR vol.31 (2014), no.2, pp. 33-65 (33 pages), Korean Women's Institute, Ewha Womans University
(7) Yohan Choi, Artist note #4, 2019
금요일-일요일 1시~7시
월요일-목요일 휴관

기획: 안성은
디자인: 마카다미아 오!
주최 및 주관: out_sight & OS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Fri-Sun 1pm~7pm
Mon-Thur closed

Curated by SeongEun An
Design: macadamia oh!
Organized by out_sight & OS
Supported by AR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