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11 — 07.12
    • 마디와 마디 Loose joint
    • HUR YOH
    • — 07.12
    • 마디와 마디
    • 허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55회 작성일 19-12-03

본문

2020. 6. 11 — 7. 12

목요일-일요일 1시~7시
공휴일 휴관

기획: 이연지(out_sight)
촬영: 정영돈
디자인: 마카다미아 오!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1 June — 12 July 2020

Thur - Sun 1pm-7pm
Public holidays Closed

Curated by Yeonji Lee
Photo by Youngdon Jung
Design by macadamia oh!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
전시 전경

전시 전경

여리여리한 뼈대,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00 x 100 cm, 2020 (좌)   /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불순물, 밀랍,100 x 100 cm, 2020 (우)

여리여리한 뼈대,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00 x 100 cm, 2020 (좌) /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불순물, 밀랍,100 x 100 cm, 2020 (우)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30.3 x 130.3 cm, 2020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30.3 x 130.3 cm, 2020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30.3 x 130.3 cm, 2020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30.3 x 130.3 cm, 2020

마디 협착, 왁스, 가변설치(각 9 x 16 x 5.5 cm), 2020

마디 협착, 왁스, 가변설치(각 9 x 16 x 5.5 cm), 2020

누워버린 뼈축, 석고, 레진, 안료, 왁스, 34 x 11 x 11 cm, 2020

누워버린 뼈축, 석고, 레진, 안료, 왁스, 34 x 11 x 11 cm, 2020

마모되는 부위; 손목,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알루미늄 철사, 점토, 13.3 x 13.5 x 14 cm, 2020


마모되는 부위; 손목,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알루미늄 철사, 점토, 13.3 x 13.5 x 14 cm, 2020


토막, 석고, 가변설치, 각 9 x 9.5 x 9cm 내외, 2020

토막, 석고, 가변설치, 각 9 x 9.5 x 9cm 내외, 2020

손깍지 협착, 석고, 38 x 79.5 x 12.3 cm, 2020 (좌)   /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00 x 100 cm, 2020 (우)

손깍지 협착, 석고, 38 x 79.5 x 12.3 cm, 2020 (좌) /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00 x 100 cm, 2020 (우)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30.3 x 130.3 cm, 2020

여리여리한 뼈대, 캔버스 위에 안료, 밀랍, 130.3 x 130.3 cm, 2020

전시 전경

전시 전경

마디와 마디

글_이연지(out_sight)


전시장의 모든 걸 보았다고 가정하고, 하얗거나 희미하고, 눈앞에 있어도 어렴풋함을 느꼈을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당신이 본 것은, 이 종이를 집으려고 쭈-욱— 뻗었던 당신의 팔, 작품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움직였던 당신의 그 두 발과 같은 것이다. 색은 희고 말랑한 살갗 아래 가장 단단한 것. 그렇다. 지금 당신의 머리에 떠오른 그것이 맞다. 오늘 당신이 이곳에 들어와서 살펴보던 그것은 당신과 나의 몸 어디에나 있는 바로 그것처럼 어떤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뼈마디들이다.

보통 몸 안의 각 뼈 마디는 여러 개의 관절로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골조를 형성하는데, 무수한 신경과 조직이 각 마디 사이부터 그 주변을 촘촘하게 에워싼다. 혹시나 한쪽이 끊어져도 다른 하나가 이를 대신 잡아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본 이 마디들은 살짝 다른 듯하다. 어딘가 느슨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작가 스스로도 ‘여리여리’라는 수식어를 사용한 것처럼 그가 이어 붙인 이 뼈대들은 보통 보기 좋다고 말하는 기골 장대한 골격은 아니다. 일단, 가느다란 마디나 마디의 사이의 들뜬 틈 하며 있는 듯 없는 듯한 모양새가 보통의 뼈대에 비해 조금은 허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견고하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을까? 단단히 맞물리지 않아도 각 뼈대가 가지런히 전개되는 모습이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한데 이 느슨한 조화로움 속에서 거슬리는 것이 생겼다. 이 견고한 균형을 늘어진 인대로 성기게 연결된 뼈대와 외딴곳에 덩그러니 있는 뼈 토막들이 함께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작가는 개인의 미묘한 영역까지도 거대한 명분으로 양식화하는 현실의 모습을 그리드 형태로 표현한 바 있다. 자신이 경험한 부조리한 현실을 향한 답답한 마음을 그리드 위에 과감한 물리적 흠집으로 남겼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 전시에서 그가 대화를 건네는 방식은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가볍고 느슨한 투에 가깝다. 그는 무엇을 말하려 애쓰는 대신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을 택하는데 이는 마치 어떠한 것이든 받아들이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무력감에 젖은 전형적인 이야기의 수순을 밟으려는 게 아니다. 그가 감내하기로 한 것은 전체 중 일부로서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일부의 일부로서 자신이다.

우리는 무엇의 일부이기보다 종속되지 않는 독립된 개체이길 원했고, 스스로 그렇게 믿기도 했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암담함을 말하며 그리드의 제거를 소망했던 그가 격자 위의 구멍 너머에서 발견한 것은 빈 대지 위로 선들을 이어 긋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취향,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징크스나 터부, 더 간단하게는 생활패턴과 같은 가장 사적인 영역마저도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또다른 외부와 관계를 맺으면서 각자의 질서를 확립해 간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의도치 않게 주변과 마찰을 빚기도 하고, 복원할 수 없는 큰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불가피하게도 우리는 서로의 범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겪어갈수록 몇 번의 보이지 않는 고비를 통해 각자에게 어울리는 간격을 맞추어 가면서 공존이라는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작가가 발견한 자신 또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상호 간의 영향 관계 속에 자신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공백을 남겨두지 않는 완전한 맞춤을 가리킨다. 이는 더욱이 흔들려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그에 상응하는 지난 경험들이 작동하게 된 것인데, 반면 느슨한 맞춤은 모종의 유연함을 상상하게 한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가보면, 은은한 색감과 가지런한 뼈마디의 배열로 조성된 안정감 있는 분위기 속에서 기둥 위로 비죽 튀어나온 작은 토막과 늘어진 띠로 연결된 마디가 눈에 들어온다. 올라가는 길목에 성기게 놓인 뼈축도, 지하와 동떨어진 지상층의 전시장도, 사실 무엇 하나도 고르게 퍼져 있는게 없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희한한 것은 이 분산된 마디들이 느슨한 맞춤이라는 연결 아래에 어긋남 없이 제자리에 잘 놓여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각 마디들은 긴밀하게 조여져 있지도 않고,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구조적인 탄탄함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허요가 취한 방식은 주어진(벗어날 수 없는) 현 상태를 넘지 않는 균일함인데 그것은 강제적인 일체화를 통한 통합체계의 구축을 말하진 않는다. 이는 각 개별체의 형태를 변형하지 않음으로써 유지되는 균형이다. 그래서 이것은 치밀하지 않고 느슨하기에 가능하다.

가끔 “더 큰 미래의 시작”이나 “더 높아진 생활가치”, “프리미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이라는 말을 휘황찬란하게 휘두른 아파트 분양광고를 보게 되면 그런 곳에서 살 기회를 눈앞에 두고만 있을 것인지 재촉 당하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날이 갈수록 주거공간이라는 인상보다 유리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실제 이름이 오벨리스크인 아파트가 있다)를 닮아가는 광고 전단 속 아파트가 어떤 이들의 삶을 재조직해서 그 자리에 들어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종종 우리는 자신이 관계 맺은 것들에 있어서 누구도 분절할 수 없도록 이를 자신의 일부로 삼아보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분리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상실감을 뒤로한 채 어떤 식으로든 그것이 끊어진 자리를 채울 다른 마디들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분절을 겪게 될 때 이를 재조직하는 과정을 거듭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처음의 단단함은 잃어가겠지만. 양식적 통일이 만연한 현실에서 허요의 마디-체계는 차이를 상쇄시키는 전체화가 아닌 이런 느슨함으로도 모난 것이 없는 균일한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느슨한 연결로 지탱되는 현실의 모습은 체계적이지 않다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행복이나 웃음이 피어나는 식의 미사여구를 붙이며 일부의 동의만으로 동의하지 않은 누군가의 생활권마저 뒤바꾸어 버리는 이 시절에 미련할 법한 그의 마디들은 당신이 의식하든 안 하든 주변과의 연결을 꾸준히 반복할 것임은 분명하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와 무늬 타일 같은 뼈대들을 살펴본다. 위아래로 나란히 이어지는 배열은 원래의 화면에 그치지 않고 바깥으로 그 주변으로 번지는 듯하다. 끝 모를 반복으로 이 공간이 무수한 뼈대에 뒤덮인다면 우리는 그 빽빽함에 숨이 멎게 될까? 눈에 띄지 않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은 그것이 멈추는 시기를 가늠할 수 없어서 지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속절없이 쌓아갔던 작은 돌탑들이 어떤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지 볼 수 있다면, 내가 볼 수는 없어도 내 자취를 발견한 이들 중 적어도 한 명은 돌탑 쌓기를 멈출 수 없었던 그 마음을 눈치챌 수 있지는 않을까.

모든 게 같은 모양이었다고 짐작하고 있을 때, 단단히 맞물린 탑들 사이로 빈틈이 숭숭 나 있는 이 돌탑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눈뜬 장님을 벗어난 그 일상이 앞으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견고하게 쌓여갈 수 있기를. 이음새를 단단히 맞물리지 않아도 탑을 세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Assuming that you have seen every piece exhibited in the gallery, I imagine you feeling that whiteness, dim and vague. What you just saw is something like your arm that you stretched to pick this paper up or your feet that you moved to walk towards the pictures on the walls. It’s white, and it’s firm underneath your tender flesh. Yes, it is what you think. What you observed today here are joints of bones that structure forms. They are everywhere in my body and yours. 

Several joints are systematically connected to form a bone structure, with numerous nerves and tissues firmly enclosing the connection. Therefore, even if one breaks, others can hold for it. However, the joints we saw today seem slightly different. They look somewhat loose.

As the artist depicts the works with an adjective ‘Yari yari (a Korean term for soft and thin)’, the bones that she conjoined are not the typical good looking strong-builds. First, slender joints, gaps between the bones, and their thin presence look rather lax. Yet, would you agree if I say that they are sturdier, unlike the impression? The neatly spreading skeletons look quite stable, even though they are not tightly conjoined. By the way, something is irritating in this loose harmony. It is the fact that joints of sagged ligaments and remotely isolated bones are together keeping up this solid harmony.

Meanwhile, Hur used to draw grids to represent our reality that stylises even the most subtle aspects of private lives. The absurdities she had faced in the world and the uneasiness she had felt in them were laid on the grids as bold physical scratches. Remembering those previous works, her gesture here seems light and easy, rather than straight and bold. Instead of struggling to say something, she chose to plainly display, as if she is willing to take whatever may come. But it is different from the typical story of helplessness. She is ready to take herself as a part of the whole or a part of a smaller part.

We wish to be an individual, not a subordinate, and we believe to be so. But what she found beyond the loophole of the grid, while addressing the hopelessness of the irresistible reality and desiring to get rid of the grid, was the artist herself extending the lines by drawing them on empty terrains. The most private sectors, including tastes for things, jinx and taboos of each reason, and simple daily routines, establish respective order by engaging with the self and sometimes others surrounding the self. Engaging with the surroundings sometimes cause trade friction, and occasionally leave irreversible traces, as not all relationship come to one’s expectation. Inevitably, we are bound to one another’s ranges, but as we undergo several invisible crises, we get to settle with each comfortable spacing, to keep the status of coexistence. That self noticed by the artist is also situated in her place amongst invisible mutual intercourses.

To remain in a steady form generally refers to a complete juncture without any chasm. Fear of being shaken and its corresponding experiences trigger such tight structuring, but loose joints motivate somewhat flexible imaginations. Entering the gallery, a joint sticking out from a pillar and a prominent skeleton with drooping connection come into sight amid balanced stability of delicate colours and neat arrangement of bone structures. Look at the bone axis on the way to the upstairs and the isolated third-floor gallery at the end of the stairway; we all know that, in fact, nothing is arranged evenly. However, strange is that these scattered bone structures seem well located in the right places under the constellation of loose joints. Each intersection is neither firmly tightened, nor structurally armed with outstanding visual sturdiness. Hur takes an attitude of uniformity not overflowing status quo, and it is different from an integrated system forced with unification. It is instead a balance sustained by not intervening in individual forms. Thus, it owes not to some meticulousness but its looseness.

Once there was an advertisement for an apartment complex, baldly asking if one would just stare at ‘the elevated life value” when facing “a commencement of a bigger future.” We don’t know whose realms have been orderly restructured to give way to those advertised apartments, which more and more resemble glass obelisks (there is an apartment called Obelisk, indeed) than residences. Leaving behind the sense of loss from being disconnected to once indivisible surroundings, the detached will, by any means, find another point of conjunction.

One will experience personal or social disconnection and restructuring throughout life. Though, the initial sturdiness might get lost on the way. In reality of rampant stylistic uniformity, Hur Yoh’s joint-system demonstrates that it is possible to maintain a round and even structure with such looseness, without a totalisation canceling all differences. One might claim that this reality of lax connection is not systematic. Her juncture might seem naive in today’s world where people’s life zones can be shifted under the rhetorics of ‘happiness’ or ‘blissfulness’ with minimum consensus. However, the loose joints will steadily continue to reconnect with the surrounding others, no matter if you realise it or not.

Now, return to the gallery and observe the bone structures resembling deco tiles. The orderly vertical arrangement seems like it is spreading beyond the frame. If this space gets covered by the infinite bone structure, then would we suffocate with its denseness? Reenacting invisible deeds might get tiring as we will never know when it shall stop. However, imagine viewing the spectacle of stone towers that I have been helplessly building (the scene that I may never be allowed to see). If anyone discovers this trace of mine, would they notice myself unstoppable of piling the pebbles? Hopefully, someone might spot empty gaps amongst the tightly stacked stones when assuming they shall all look identical. I wish, then, one could sturdily pile their everyday in a way different from before. For it is possible to erect a tower without tight interlockings.

Text by Yeonji Lee(out_sight, curator)
Translated by jinho Lim(out_sight, curator)
2020. 6. 11 — 7. 12

목요일-일요일 1시~7시
공휴일 휴관

기획: 이연지(out_sight)
촬영: 정영돈
디자인: 마카다미아 오!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1 June — 12 July 2020

Thur - Sun 1pm-7pm
Public holidays Closed

Curated by Yeonji Lee
Photo by Youngdon Jung
Design by macadamia oh!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