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2.14 — 01.19
    • Nolandscape
    • Lee Jungun
    • — 01.19
    • 이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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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3회 작성일 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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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ing: Sat 14 Dec 2019, 6pm
Period: 14 Dec 2019 — 19 Jan 2020
Hours: Thur — Sun 1pm ~ 7pm
Public holidays OFF
오프닝 리셉션: 2019. 12. 14 (토) 6pm
전시기간: 2019. 12. 14 — 2020. 1. 19
관람시간: 목 — 일 오후 1시 ~ 7시
공휴일 휴관

글_김상진


어느 미술 키드의 생애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약 20년 전이었다. 우린 홍대 입시학원 거리의 중심가에 위치한 어느 건물에서 수능 후 막바지 입시를 준비하는 수십 명의 입시생을 겨울 동안 함께 가르쳤다. 그는 날고 긴다는 강사 중에서도 그림을 꽤나 잘 그리는 편이었다. 그리고 꽤나 가난하였기에 그는 늘 억척스러웠다( 나와 처음 만났던 겨울을 단벌로 지낸다거나, 신입생 시절 이틀을 굶다 선배들에게 초대된 저녁 술자리에서 닭갈비를 한번에 5인분쯤 (게다가 사리도) 먹는다던가, 밥값이 없어 다른 학생들의 와꾸를 짜주고 밥을 얻어먹는 그런) 그러나 다행히 아집에 가까운 굳건한 자존심 또 한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그가 연습장에 만화를 그리던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말하던,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 그것은 때때로 그의 자아를 지탱하는 모든 것인 듯 보였다. 그것은 그의 손에 들려있던 유일한 창이며 방패였다.

그는 멋진 창과 방패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신 늘 가난이라는 족쇄를 끌어야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학교를 다니기 위해,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늘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꼭 사태의 본질적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졸업 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는 아직 무엇을 그릴지 결정하지 못한 듯했다. 다만 그는 생계와 학자금 융자의 변제를 위해 아시바를 타고 벽화를 그릴 뿐이었다. 그에게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생긴 후에도 그리고 그림 그리는 법을 묻곤 하던 후배들이 하나둘씩 작가가 되어 혹은 작가가 되기 위해 떠날 때에도 그는 여전히 무엇을 그릴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그의 망설임은 신중한 선택을 위한 유보라기보다는 그의 마지막 보루(창과 방패)가 처연히 짝짓기에 실패하는 장면을 목격하지 않으려는 굳건한 의지(두려움)에 가까워 보였다. 

우리의 시대는 사실 그러하였다. 석고상이나 정물을 구상적으로 그려 그 우열을 나누는 가장 근대적 입시체계 속에서 경쟁에 승리한 학생들은 이미 일종의 훌륭한 모더니스트로 길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당시 미술대학은 훌륭한 모더니스트를 뽑으면 4년 뒤 훌륭한 포스트-모더니스트(글로벌 시대에 적합하려면)가 될 것이라 믿었던 아름다운 미술교육의 상상이 실현된 실험실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잘 그리는’ 그리고 ‘잘 만드는’ 학우들이 끝끝내 그들에게 요구된 그 기이한 변태를 완료하지 못하고 혼란과 혼돈 속에 때로는 미술에 대한 혐오 속에 작가의 꿈을 접는 모습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그 뒤로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불혹을 넘긴 그는 여전히 벽화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친구들은 언제부턴가 더 이상 그에게 작업에 관해 묻지 않았고 그도 더 이상 그의 절대적 사명이었던 작가가 되겠다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게 끝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 작가의 오프닝을 가면 그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이어진 술자리에서 거하게 취한 그가 말했다. “난 작가가 되지 못할 거야.” 그림에 관한 그의 순수하고도 지독한 아집 그리고 고집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곧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고 떠들어 댔다.

약 1년 뒤 그는 그가 그린 그림들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림들 속에서는 그가 과거에 종종 시도해보곤 했던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시도들이 사라지고 전시와 작품 그리고 사람들이 스냅 샷 속의 풍경과 정물처럼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것은 그의 자존심이 어떤 거대한 주제가 아닌 타인의 전시장 풍경을 스스로의 일상적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그는 어느 날 이것이 그에게 펼쳐진 가장 현실적인 풍경이며 그가 몇십 년간 계속해서 바라보던 미술의 풍경임을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서는 미술의 일부로 보이지 않았기에 기억되지 않았지만, 다시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면 몹시 낯익은 미술계의 일상적 풍경들(오프닝에서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 부서진 미술품, 야외 조각을 설치하는 풍경, 아트페어의 작가 인터뷰 등)이 약간의 원근을 두고 능숙한 붓놀림과 함께 지극히 관조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약간의 거리는 예술이라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뒷모습 정도까지의 거리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좋은 일이 생겼다. 하나는 대중의 일상을 예술로 담아오기에 바쁘던 우리에게(미술계의) 우리의 일상을 기록해 줄 작가가 한 명 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치 아서왕의 칼처럼 움직이지 못하던 그 소중한 창과 방패를 그가 휘두르는 모습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ps. 그동안 예술이 일상의 기록에 집중해 왔던 것은 그것들이 산업화, 이데올로기, 세대갈등 등의 여러 거대 사회적 정치적 담론들이 태생적으로 포괄하지 못하는(두꺼운 책의 목차와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화되어 소실되는) 영역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러한 위엄있는 담론들이 실제 현실의 층위에서 어떠한 태도(맥락)를 형틀로 삼아 그들의 형상을 구축하였는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한 장의 사진은 기사의 수많은 글자보다 의미심장하다. 이정운은 이번 전시에서 예술의 놀라운 극장성을 위해 늘 사라지곤 하는 어떤 풍경 없는 풍경(예술계의 일상)을 포착한다. 그러니 상상해보자 예술이라는 거대한 현대의 신화를 만들어가는 미술계라는 공장의 풍경을. 신화를 만드는 평범한 이야기들을.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그 풍경 없음(No Landscape) 을.
Opening: Sat 14 Dec 2019, 6pm
Period: 14 Dec 2019 — 19 Jan 2020
Hours: Thur — Sun 1pm ~ 7pm
Public holidays OFF
오프닝 리셉션: 2019. 12. 14 (토) 6pm
전시기간: 2019. 12. 14 — 2020. 1. 19
관람시간: 목 — 일 오후 1시 ~ 7시
공휴일 휴관